사랑하는 목사님,
우리와 함께하던 목사님들이 교회를 떠날 때는 대부분 교회를 개척해서 담임목사로 갑니다. 
그러다 보니 그 날로 저는 그 분의 담임목사는 면하게 되는데 
권목사님의 경우는 캄보디아로 가셔도 여전히 제가 담임목사네요.

담임목사로서 마지막 권면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담임목사인 제가 선교사로 떠나는 권목사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형식은 권면과 교훈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권선교사님을 향한 제 사랑의 고백입니다.
저나 권목사님이 하나님이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 하였도다.”라는 소리를 듣길 소망하며 이 글을 씁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목사님은 선교사입니다. 목사님은 캄보디아에 선교하러 갑니다. 단순한 사실이지만 이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하러 캄보디아 가는 것 아닙니다. 경제 개발하러 가는 것도, 비지니스하러 가는 것도, 구호활동하러 가는 것도, 언어배우러 가는 것도, 학위 받으러 가는 것도 아닙니다. 선교하러 가는 겁니다. 목사님은 선교사입니다. 그 땅에 하나님이 목사님을 보내신 목적이 선교입니다. 전도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그 땅에 전하기 위함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전도가 권목사님이 그 땅에 간 주목적임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언어를 배우는 일도, 공부하는 일도 이 선교를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사랑하세요. 선교는 사랑으로 하는 겁니다. 사람을 사용하면 안됩니다. 캄보디아 사람들 이용하면 안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도 캄보디아에서도 우리 사람들을 사용하지 맙시다. 사랑합시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목회자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사용해선 안됩니다. 사랑으로만 가능한 게 목회입니다. 사랑으로만 가능한 게 선교입니다. 목사님이 쓴 글을 읽으니 캄보디아와 캄보디아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아주 진하게 느껴집니다. 참 좋습니다. 그 사랑이 권목사님을 선교사 되게 했습니다. 앞으로도 그 사랑이 권목사님을 선교사로 살게 할 것입니다. 사랑은 소진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날마다 사랑을 충전받아야 합니다. 사랑은 우리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날마다 우리 마음에 부음바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계속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성령충만하세요. 성령충만을 유지하세요. 성령충만해야 우리를 통해 성령이 나타납니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우리 얼굴로 나타납니다. 우리 인격을 통해 나타납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우리 얼굴이 빛납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우리 본성이 드러나질 않습니다. 성령이 소멸되면 우리 본성이 드러납니다. 우리 본성은 우리가 잘 알듯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게 드러나면 추해집니다. 성경은 우리의 본성을 육체의 소욕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날마다 성령으로 우리의 본성을 덮고 삽시다.  

사랑하는 목사님, 주장하는 선교사가 되지 마시고 섬기는 선교사가 되세요. 이건 목사님 특기이기도 하지요. 이거 변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목사로 부름을 받을 때 하나님이 마음에 새겨주신 말씀이 있지요. 베드로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그래요. 우리는 주장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입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맡겨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캄보디아 사람들을 맡겨주시는 것은 주장하라고 맡겨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섬기라고 맡겨 주시는 겁니다. “나는 하나님과 캄보디아 사람들의 종이다.” “나는 하나님과 성도들의 종이다.” 우리 잠시라도 이거 잊지 맙시다. “주인이 결정하면 종은 따른다.” 우리 지금처럼 늘 이렇게 외치며 삽시다. 우리 목자장이 나타날 때 영광의 면류관을 얻어 쓸 수 있는 그런 주의 종이 됩시다. 

사랑하는 목사님,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선교사가 되세요. 8년을 듣던 얘기지요. 어제 주일에도 함께 들은 말씀이지요. 그래요. 목사님, 우리를 통해 사람이 살아나고 사람이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이 땅에서도 캄보디아 땅에서도, 저를 통해서도 목사님을 통해서도 사람이 세워지고 사람이 살아나야 합니다. 우리를 만난 사람들마다 다 살아나고 회복되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캄보디아에서 목사님을 통해 살아나고 회복될 수많은 영혼들을 믿음으로 미리 보고 춤을 춥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세요. 어제 파송예배 설교 때 같이 나눈 말씀이기도 하지요. 사람은 눈에 보이는데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다보니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사람을 바라보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힘을 다해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러면 안전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 그 분만을 바라보세요. 제가 전에 목회는 고개돌리기라고 한 말을 기억하시지요? 네, 그래요. 선교도 고개돌리기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고개가 돌아갑니다. 좌로 돌아가고 우로 돌아갑니다. 문제로 돌아가고, 좋은 걸로 돌아갑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고개를 예수께 돌려야 합니다. 고개가 문제로 돌아가면 낙심합니다. 좋은 걸로 돌아가면 그것을 그만 하나님 삼아 버립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 삼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셔도 좋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늘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고개 돌리기, 실시!” 날마다 외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동료 선교사님들과 사이좋게 지내세요. “싸우면서 일하려면 일하지 말자. 싸우면서 잘하는 것 보다는 싸우지 않고 보통만 하는 것이 낫다.” 8년을 들은 얘기지요. 저는 15년을 하고 있는 얘깁니다. 사모님과 두 분이 나가시는데 두 분이 사이 좋게 지내셔야 합니다. 또 주변 모든 사람들과 평화해야 합니다. 특별히 동료선교사님들과 사이좋게 지내세요. 선교사님들을 잘 섬기세요. 단기선교 나갈 때 제가 늘 드렸던 말씀 기억하시지요? 선교사로 나가서도 그대로 하면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동료선교사님을 섬기면 됩니다. 무엇을 도울까? 날마다 찾으세요. 칭찬해 주세요. 동료 선교사님들을 안아주세요.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세요. 웃는 선교사와 함께 웃고, 우는 선교사와 함께 우세요. 다른 선교사를 통해 캄보디아 땅에 하나님이 큰 일을 이루시거든 그 선교사만큼 크게 기뻐하며 함께 춤을 추세요. 이렇게 기도하세요. “하나님, 이 캄보디아 땅에 와 있는 선교사님들에게 세계 각국에서 기도가 밀려오게 하시고, 재정이 밀려오게 하시고, 프로젝트가 밀려오게 하시고, 사람들이 밀려오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면 웃는 선교사와 함께 웃게 될 것입니다. 동료선교사가 웃는 모든 일이 권목사님 기도 응답이 되는 겁니다. 기도 응답받은 자의 기쁨이 날마다 충만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겸손하셔야 합니다. 사람의 본성은 교만입니다. 목사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미안하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그렇습니다. 본질상 겸손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에게 가서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겸손해집니다. 지금 목사님께 예수님의 겸손이 있습니다. 그 겸손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사람이 변질되는  대표적인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무엇을 좀 얻거나 이루게 되면 첫번째 찾아오는 시험이 교만입니다. 우리가 목사가 될 때 너무 너무 많이 들었던 권면도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입시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들에게주시는 은혜 가운데서 삽시다. 우리 함께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사단이 우리로 하여금 교만하게 하려고 얼마나 몸부림 치는지 알지요? 목사에게 교만은 독 중에 독입니다. 선교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좀 알아주고 인정해 줄 때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목사님이 겸손하지 않으면 주변에 목사님 겸손하게 하는 사명자가 생깁니다. 우리 알아서 겸손합니다. 괜히 주변 사람 ‘사명자’ 만들지 말고 알아서 겸손합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는 말씀은 아무리 많이 듣고 들어도 또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좋은 마음으로 설교해야 합니다. 마음에 분이 있거나 서운함이 있을 때는 설교를 쉬세요. 그 때 글을 쓰거나 설교를 하면 그 설교에 독이 섞여 나갑니다. 먹는 사람들은 그게 독인줄 모르고 먹습니다. 사람이 독을 먹으면 독기가 오릅니다. 젖을 먹어야 사람이 삽니다. 강단에서 순전한 젖이 아닌 독이 섞인 설교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상황일 때는 차리리 설교를 한 주 쉬는 게 좋습니다. 글쓰는 걸 잠시 멈추는 게 좋습니다.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축복하고 싶은 마음을 늘 준비하세요. 설교 준비보다 어쩌면 이것이 더 중요한 준비입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아버지 마음으로 품는 선교를 하세요. 이번에 목사님이 섬기던 부서에서 후임자를 목사님 처럼 아버지 마음으로 품어줄 분을 구하더군요. 그래요. 지금 여기서 하던 것 처럼 아버지 마음으로 선교사 하면 됩니다. 아버지 마음으로 캄보디아 사람들을 품어주세요. 아버지 마음이면 다 품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 품에 들어오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품어 주신 것 처럼, 우리 평생 아버지의 넓은 품으로 품고 삽시다.  

좀 길었네요. 내일 이른 아침에 떠나야 하는데 읽을 시간이나 있나 모르겠습니다. 아들이 곁에서 목사님 메일로 보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 하네요. 그래요. 권목사님 개인 앞으로 쓴 글이니 당연히 개인 메일로 보내야 하지만 이 방에 올립니다. 권목사님을 부르며 쓴 글이지만 실은 이 글은 저 자신을 향해 쓴 글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목사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는 성도들을 섬길지를 정리한 겁니다. 이 글 속에는 “조현삼, 너 겸손해야 해.”하는 하나님의 소리가 들어 있습니다. 변화는 하되 변질은 되지 않기를 소망하며 쓴 글입니다. 

오늘 집으로 찾아온 권목사님 내외분과 맞절을 하면서 받은 은혜가 큽니다. 
선교사로 떠나는 목사님께 절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섬기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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