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앞두고 자녀를 위한 세이레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선교 훈련 기간 중임에도 하나님께서 은혜의 시간을 주셔서 기도하러 교회로 가고 있습니다.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있겠지만 부모에게 있어 자녀를 위한 기도만큼 간절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딸들과 떨어져 지낼 날이 가까워질수록 조급함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주께 맡긴다고 고백하면서도 어느덧 자녀를 향한 주도권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못하고 끄트머리를 붙잡고 있는 저를 봅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눅18:15-17]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라는 구절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평행본문인 마태복음에는 ‘만져주심’을 안수하고 기도해주시기를 바라며 예수님께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올 수 밖에 없는 상황들, 예수님이 그들을 만져주셔야만 하는 사람들의 간절함이 제 마음 같아서였나 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어린 자녀가 예수님의 손길과 기도로 변화되고 살아날 것을 소망했고 예수님이면 그렇게 하실 분이라는 기대도 있었을 테지요.
예수께서 ‘만져주심’은 헬라어로 ‘소속하다, 관계되다, 만지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만지심이 그분께 소속되고 그분과 관계있는 자가 된다는 의미로 다가오니 울컥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예수님만을 구하며 그분의 만지심이 필요하다고 고백하는 자의 절박함과 간절함을 주님은 외면치 않으시고 그들을 불러 가까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곳, 그분의 다스림과 간섭하심이 절실한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도 임했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과 소망으로 다시 자녀들을 예수님 앞에, 기도의 자리로 데려 갑니다.

“주님의 손길로 이 자녀들을 만져주세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 예수님께 속하고 관계된 자로 이 땅을 살아가게 해주세요.“
이 밤 저와 동역자분들의 모든 자녀들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주의 만져주심의 은혜가 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 맡김은 기도를 멈추겠다는 것이 아니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는 모든 것들의 결과까지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이다 “